독자성을 얻게 되는 과정에 관하여 (헤겔 -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중간자 - 절대적인 순수한 혼자로서의 나는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뿐 우리는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관계를 통해서 존재한다 때문에 중간자라고 정의한다.
마찬가지로 타인도 절대적인 순수한 혼자로서의 타인은 이론적으로 존재할 지 몰라도 타인을 인식할땐 나와의 관계속에서 인식하기때문이다.
<극단적 나> <-> <중간자> <-> <극단적 타인>
중간자로써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면서 존재한다. 내가 독자적 존재인만큼 타인 또한 독자적 존재이다.
만약 나 자신만이 절대적이고 독자적 의식을 가졌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나보다 저열한 의식만을 가졌다고 한다면 나는 확실한 진실을 오직 나의 판단에 의존해서 가려야하기떄문이다. (= 변증법)
다른 사람들 또한 나와 독자적인 의식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진실을 찾아나서게 됨
하지만 문제는 실제 세상에서는 서로 다른 의식들 간의 관계가 동등하게 형성되지는 않는다는 것 하나의 의식은 다른 의식을 인정하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 대표적으로 주인과 노예의 관계 노예는 주인을 독자적 의식으로 인정하지만 주인은 노예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노예가 없는 사람은 스스로 어려운 일들을 마주하며 살아가야하지만 주인은 노예들에게 시킴으로써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이때 주인의 자기의식은 더 이상 중간자가 아니게된다.
주인의 의식 -> 노예의 의식 -> 다른 대상들
또한 노예를 갖게 된 주인은 더 이상 다양한 사물들과 직접적으로 관계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게 아니라 노예가 작업한 결과물만을 즐기면서 욕망을 충족시키기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사물의 제대로 된 측면은 오히려 노예만 알게 되고 주인은 노예로부터 가공된 측면만 알게됩니다.
예를들어 요리를 할때 노예는 요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알지만 주인은 요리 그 자체만 알게된다.
역설적으로 계속 주인이 노예를 부리다보면 주인은 노예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의 대상들과 제대로 관계할 수 없는 누구보다도 의존적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 중국 황제들이 내시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했던 것)
또한 주인과 노예 사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인정이 사라지게된다. 인정이 교환의 구도가 아니고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인정만 생긴다 서로 동등하게 독자성을 가진 인정성이 아니니깐요
주인은 자신이 노예에게 인정을 받음으로써 독자성을 지닌 의식을 얻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인정은 종속적인 노예의 인정에 불과하기때문에 주인은 독자적 의식이 아니게된다.
이때 오히려 주인보다 노예의 의식이 더 독자적인 의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노예가 독자적 의식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깊은두려움
노예는 이미 주인에게 생명을 위협당하본 경험을 통해 존재 자체가 뒤흔들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했다. 그 경험을 통해 노예 안에서는 모든 고정된것들이 흔들릴 수 있다 => 꺠달음으로 나아가는 단계
내가 죽을 수 있는 존재인걸 알기때문에 오히려 나 자신에게 주어진것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다
섬김
노예는 계속 주인을 서기게 된다. 내 욕망은 잠시 접어주고 주인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것 이때 자연적으로 내 욕망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내 욕망을 절제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
노동
노동을통해 세상의 대상들이 나의 뜻대로 쉽게 바뀌는 존재가 아니라는걸 꺠닫게 된다.
어느 순간이 되면 노예는 주인이 자신에게 의존적이고 자신이야말로 진정으로 독자적인 존재라는 걸 의식하게 될지 모른다. 주인은 노예가 없이도 살 수 없는 존재가 된 반면 노예는 주인이 없어도 세상의 대상들과 직접 관계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존재하기때문
- 두려움만 있는 상태
- 그저 불안에 떠는 상태
- 깊은 두려움을 망각한 상태
- 그저 숙련된 솜씨로만 있을 뿐 독자성을 깨닫는 방향으론 가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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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https://www.youtube.com/watch?v=i9tAzWygx9w